"'무함마드 깐수'로 살기 전부터 아프리카 문명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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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1 23:56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아프리카 연구 55년 만에 책 펴내

1955년 12월 스물한 살의 조선족 출신 베이징대 학생이 이집트 카이로 대학으로 국비 유학을 갔다. "백두산 오지의 촌뜨기가 세상을 처음 접했지요. 두 가지를 알았습니다. '이집트'라는 고대 문명과 '아프리카'라는 치욕을 당한 세계가 있다는 걸. 한 세계가 음과 양처럼 두 가지로 분리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이 세계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곤 했다. 중국 외교부 소속으로 모로코 주재 대사관에 근무하며 알제리 전쟁을 지원하는 일을 하다 보니 아프리카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 책을 쓰고 싶은 욕망이 불거지던 1963년, 아버지의 나라인 북한으로 돌아왔다.

정수일 소장은“이 책은 28년간 세계를 종횡 일주한 마무리에 대한‘인증샷’인 셈”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평생의 업(業)이던 아프리카에 대한 책이 55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남한에서다. 그는 1996년 7월 공안 당국으로부터 '아랍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으로 공식 지목됐다.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5년간 복역하고 2000년 출소한 정수일(84)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이다.

그는 11일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이 책의 화두는 설욕(雪辱)이다. 아프리카의 노예무역, 대륙의 식민지 분할 등과 같은 치욕을 아프리카가 어떻게 극복해 나왔는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책을 쓰며 가진 또 하나의 의문은 '설욕 이후의 아프리카는 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

그는 "1960년대 초부터 70년대 초까지 아프리카 나라 70~80%가 독립을 쟁취하게 됐다. 아프리카의 해방 투쟁 1~2세대는 아프리카의 미래를 사회주의에서 찾았다"고 했다. 그는 "제3세계에서 사회주의가 갖는 의미를 연구하고 성공과 실패를 분석하고 싶었다"고 했다.

실크로드를 답사하고 동·서 문명 교류를 연구한 정 소장은 많은 단독 저서를 냈고 '이븐 바투타 여행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여든 넘은 고령에도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의 이력엔 항상 '무함마드 깐수'란 이름이 따라붙는다.

정 소장은 "남은 인생의 과녁은 문명 교류학을 한 권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앞으로 여섯 권 정도 책을 더 쓰면 평생의 목표에 도달할 것 같다. 다 하겠다고는 장담 못하지만 하는 데까지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